1. IT 취업을 하기까지 - 웰컴 투 0,1

2012. 7. 5. 10:35V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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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탄하지 않았던 군 제대후 3년간의 시간                   


나는 1류 대학을 졸업하지도 않았고, 취업이 잘되는 전공도 아니었다.


내 나름대로의 철학이라면 사회에 나가서 취업을 하고 승진을 하면 언젠가는 관리직의 자리에 오르게 될 것이고, 그때를 대비해서 미리 누군가를 지도하는 직책을 맡아봐야 겠다는 생각으로 장교로 군대를 다녀와야 한다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전공이 인문계열인지라 학교 선생님, 학원 선생님 외에는 딱히 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썩을 ㅠ.,

군대를 제대하고 교육대학원에 진학을 했다가 정부의 공교육 정책이 내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감을 느끼고 휴학계를 내고서 공무원 공부를 했었다. 

그러나 그러나 짧은 기간에 모든 걸 짜내려는 욕심때문이었을까..?

1년이 채 안된 시간 동안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를 하다보니 몸이 상해져버렸다.


매일 김밥만 먹으며 구석에 박혀 공부만 하다보니 너무 단시간에 폐인이 되어버렸다.

안되겠다 싶어 취업을 결심하고, 정부에서 시행하는 청년 인턴제를 활용하여 신문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월급은 세금 떼고 나니 고작 90만원 남짓이었다.


교육청을 출입하고, 경찰청에도 들어가고, 사건 사고 현장에도 취재를 나가고..

사회부 기자로 활동을 하면서 내 능력을 발휘하는 유익한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너무도 많이 보고 그런 글만 접한지라 나는 점점 더 어두워져가고 있었다.


기자 생활을 결국 또 6개월 남짓한 시간에 마무리짓고, 이렇게 하다가는 내 20대가 허무하게 끝나버리겠다는 생각에

잠시 휴식기를 갖고자 일주일에 2일은 파트 타임으로 학원강의를 하면서 학생들과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학생들의 밝은 모습을 보니 나도 에너지가 점점 발산되는 기분이었다.

그 에너지를 발판 삼아 인터넷 강의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하루는 강남에 있는 스튜디오로 출근을 하여 강의를 찍고 매달 촬영한 강의 수만큼 페이를 받았다.


교육대학원 -> 공무원 공부 -> 기자 -> 학원, 인강 촬영 -> 그리고..


그러다 또! 정부의 사교육 정책의 변화에, 교과서는 출판사가 분할되면서 학원에서 가르쳐야하는 출판사가 10여개 가까이로 늘어나 버렸다.

학원가에서는 점점 선생들의 입지가 좁아져갔다. 말그대로 무언의 정리해고 바람이 불고 있었고,

나 역시 그 바람을 피할 순 없었다. 나는 1년만에 실업자로 전락해버렸다.

공원에 홀로 앉아 편의점 도시락을 먹으며 처량한 내 신세를 한탄하며 한없이 펑펑 울기도 하고

밖에 나가는 것이 두려워(대인기피증인가??) 집에 틀어박혀 한달가까이 면도도 하지 않고 잠만자기도 했다.. 


그렇게 군대를 제대하고 어느덧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결국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선생을 뽑는 학원이라면 가리지 않고 다녔다.

때로는 주1일에 20만원을 받으며 생활을 유지하기고 하고, 출퇴근 시간이 2시간 가까이 되는 시도경계를 넘나드는 학원도 다녔다.

고맙게도 예전에 촬영했던 인강의 반응이 좋아서 연락이 다시 왔고, 강의수가 3배 가까이 늘었다.


2011년 중순에 이르러 거의 매일 오전 9시~12시에는 인강 촬영을.. 오후 3시~밤 11시까지는 학원 강의를 했다.

투잡체재로 딱 3달을 하니 도저히 몸이 견뎌내질 못했다. 

결국 인강과 학원 강의를 접게 되었다.

남은 건 투잡을 뛰며 모은 적금뿐이었다.


또다시 밥을 굶으며 비참하게 생활하지 않으리라는 굳은 결심으로 새로운 직업을 찾아 떠났다.

마음이 심난하고 울적해지려고 날엔 밤이든 새벽이든 가리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무작정 버스를 타고 새벽 첫차로 강원도든 남해든 바닷가로 여행을 갔다.

그것도 혼자서 ;;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할 수 없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

20대에는 내 나름대로 많이 경험해야 한다고, 그리고 경험했노라고 내 위안을 삼으며 정말 이제는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IT 학원으로.                                                                                


난 결심을 했다.

어릴적부터 내가 좋아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았다.

초등학교 3학년때 수업중인 컴퓨터 선생님 교실에 들어가 GW 베이직을 알려달라며 울던 때가 문득 떠올랐다.

아무것도 모르고 할 수도 없는 한낱 어린이였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그렇게까지 당당했던 모습이 생각이 났다.

그런데 성인이라는 변명으로 어른이라고 으스대던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있는가에 회의감이 들었다.


그 결심의 끝은 다름 아닌 IT 였다.

3D를 넘어 4D라며 직업을 격하시키는 직업인들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나는 생각했다. 이 세상에 돈버는 일은 당연지사 어려운 일이라고.


적금으로 모은 돈을 생활비로하여 집에서 그나마 가까운 IT 학원을 선택했다.

나는 비전공자에 컴퓨터 관련 자격증이라고는 워드1급밖에 없는 너무도 허접(?)한 프로그래머 준비생이었기에

인터넷 강의를 통해 각종 기반 지식들을 쌓기 시작했다.

1주일쯤 지났을까, 다음주부터 수업 들을 수 있다는 통보가 왔다.


이것만큼은 대한민국에 감사했다.

돈 한푼도 안내고 ( 다만 밥값, 차비가 나오는 교육 과정은 아니었다. 다른 교육과정은 나오기도 한다. )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현실에 감사했다.

학원에서 초보 개발자를 대거 양산하고 무자비로 쏟아내고 있다는 것에 회의감을 가지고 있다는 현직 개발자 선배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업으로 삼아 먹고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단비같은 소식이다.

할거 없어서 그냥 개발자나 해볼까 하는 차원이 아니라, 정말 먹고 살기 위한 직업의 선택이다..


어차피 할거 없어서 그냥 해볼까 라고 안일하게 시작한 사람은 1년안에 다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는다고 한다.

난 그렇게 학원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그러나... 

학원 강의의 만족도는 높지 않았다.

내 스스로의 공부시간이 더 많았다.

프로젝트를 하면서 자바와 JSP만 마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5개월 반 과정에서 3개월만 마치고 나온것이다..


그것도 사실 생활비를 과다하게 쓴 탓인지 적금을 다써버렸기에 다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ㅠ


사실 모든게 겁이 났다.

아는 정보가 전무하기 때문에 어떤 회사를 들어가야 할 지, 얼마나 연봉을 받아야 할 지 감이 오질 않았기 때문이다.

악덕 회사에 가면 월급을 떼이기 일수라는 말이 즐비했다.

물론, 급여는 내 학원 생활에 비하면 1/3도 안되는 수준이었지만, 돈 때문에 직업을 택한 것은 아니었기에 그다지 염두에 두지 않았다.


난 이렇게 취업에 성공했다.





- 다음 이야기 : IT 취업, 고통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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